2003년 미국에서 발간된 ‘맞벌이의 함정’이라는 책에서는 미국 중산층의 가처분 소득이 사교육비와 주택비용으로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중산층들이 자녀의 교육을 위해 학군이 좋고 범죄가 적은 교외지역으로 몰리면서 해당지역의 주택가격이 급격히 상승했다. 부담스런 주택가격임에도 그들은 20년 이상의 장기 모기지 대출을 얻어 과감히 투자를 했다. 맞벌이 소득에 모기지 대출 상환원리금과 자녀 사교육비 등의 고정비를 맞추어 놓고 무리한 가계 지출을 유지하고 있었다.
책의 저자들은 맞벌이 소득에 고정 지출을 묶는 무리한 가계 수지로 중산층 가정이 몰락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가정의 재무 사건이 변동하게 될 경우 충격을 흡수할 쿠션이 전혀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가계 유동성을 쿠션에 비유하면서 만에 하나 소득이 감소하고 주택시장이 하락세로 돌아서거나 경기가 하강국면으로 이어지게 될 경우 파산에 이르는 중산층이 크게 늘어날 것을 경고 했다.
그 책이 출간된지 3년만에 미국 경제는 결국 심각한 유동성 위기, 신용경색으로 이어지는 서브프라임 사태를 맞게 되었다.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 금융회사들이 과도하게 부채를 내주고 그 채권을 파생상품으로 엮어 내다 팔면서 신용경색 위기까지 맞게 되었다. 그러나 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미국의 금융회사들이 부동산 시장에 지나친 믿음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무리한 부채를 내 주었을까?
조금의 틈도 없는 가정 경제에 대한 염려는 없었다.
파생상품으로 위험을 분산하고 있다는 금융기법에 대한 자만도 현실을 냉철하게 보지 못하게 하는데 한 몫 했다.그러나 아무리 금융기법이 대단하다 해도 경제 주체의 기본인 가정경제가 무너지는 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다. 제아무리 첨단 금융기법이라 하더라도 개별 가정에서 수입과 지출의 불균형을 이겨내지 못해 터지는 것은 막을 길이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이 바로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의 직전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심각하게 염려할 때이다. 가계부채가 800조를 넘어서고 심지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국민 일인당 1500만원 이상의 빚을 지고 있는 상황이다.
평범한 가정이 집으로 인해 부채 1억 이상을 유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1억 이상의 부채를 갖고 있다면 매월 부채를 갚기위해 90만원 가량의 원리금을 지출해야 한다. 거기에 사교육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영어 유치원 하나만 보내도 100만원이 넘는 돈을 써야 한다. 주거비용과 사교육비로만 200만원 가량의 돈이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셈이다. 저축은 커녕 가계 수지에 숨 쉴 틈이 없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과도한 빚을 지고 있는데 누가 더 집을 살 수 있을까? 현재 1억 이상의 빚을 갖고 있는데 투자가치가 있다고 또 빚을 내서 다른 집을 사겠다고 할 수 있을까? 혹 그러고 싶어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새 집을 사기 위해서 적은 돈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집 값은 웬만하면 3억이상이다. 1억 이상의 빚을 이미 갖고 있는 데 거기에 3억을 추가로 부담해서 집을 살 수 없는 것이다.
지난 5월 은행업계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한 시중은행에서 주택담보 대출을 받은 349442명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23%가 1억 이상의 부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빚이 있는 네 가구 중 한 구가 부채를 1억 이상 부담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이후 부채가 감소하기는 커녕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다는 것을 감안 했을 때 부채가 1억 이상인 가정은 더 늘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2007년 삼성경제 연구소의 ‘가계 부채 위험도 진단’이란 연구보고서에서 발표한 소득 계층 별 부채 수준을 보면 일반 가정에서 부채가 어느 정도 과도한 수준인지를 알 수 있다.
(표 참조)
앞으로 추가로 집을 살 수 있는 여력이 될만한 300만원에서 500만원 이상의 소득자 들의 부채 비중을 살펴보자. 무려 소득 대비 171%,142%나 차지 한다. 다른 소득 계층의 부채 비중이 더 높기는 하지만 소득 자체가 낮기 때문에 부채 절대액수는 그리 심각한 수준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300만원 이상의 소득자는 부채 절대 액 자체가 대단히 큰 수준이라는 것이다. 449만원의 소득자라면 부채가 1억이 넘는 수준이다. 결국 이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이 높은 사람들은 그 만큼 빚을 크게 부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나마 집을 추가로 살 여력이 되는 소득이 높은 사람들이 빚이 많다는 것은 주택 수요가 실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게다가 가계 부채와 관련된 소식은 시간이 흐를 수록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하다.
올 4월 한국은행이 작성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개인의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보고서에 의하면 가처분 소득 중 부채를 갚아야 하는 비중이 20%가 넘는다. 즉 연간 1000만원의 가처분 소득이 있다면 이중 200만원 이상을 빚을 갚는데 써야 한다는 것이다. 저축율은 지난해 3% 수준에서 2.3%까지 떨어졌다. 웬만한 가정은 빚을 갚느라 정신이 없고 저축은 거의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과연 무서울 정도로 오른 집을 더 살 수 있는 사람이 남아있기는 한 걸까?
설사 추가 수요가 있다하더라도 차익을 바라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욕심을 채울 수준의 수요는 크게 창출되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지 불행인지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집값이 추가로 오를 것이란 기대심이 있다. 기대심이 반영되어 당장 빚 갚는 것이 부담스러워도 버티는 가정이 많다. 매물도 없고 수요도 없는 거래 실종의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간간히 그간 상승대열에서 소외되어 왔던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급상승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 조차 더 오를 것이란 기대심이 반영되어 집 주인들이 집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매물은 적은데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적다는 이유로 사겠다는 사람이 잠시 몰린다.
최근의 강북지역의 소형 아파트 가격의 급등원인은 이와 같은 저평가에 대한 인식이 시발점이 되었다. 거기에 사교육 시장까지 가격 급등에 한몫 거들었다. 새정부 들어 들썩이는 교육정책에 대한 불안함이 전제되어 있는 상황이다. 강북 모 지역이 전국의 특목고 진학률 1위라는 소문이 돌면서 관심이 집중되었다. 여기에 적당한 투자처를 찾고 있던 강남 엄마들이 그 지역의 집값을 순식간에 끌어올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 상승 분위기는 오래 갈 것이 못된다. 오를만큼 오르면 지불 능력이 있는 수요가 적어 시장은 다른 지역과 같이 냉각될 것이 뻔하다. 이제는 수요보다 공급이 과잉되었다는 것에 시선을 돌려야 할 때이다.
전국적으로 미분양 아파트가 IMF때보다 많다는 것도 실제 수요대비 공급과잉으로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는 것을 예측해 볼 수 있다. 수요자의 주머니 사정, 빚을 갚을 현금흐름과 무관하게 자산 가격이 끝도 없이 오를 것이란 믿음은 상당히 무리한 것이다.
짧은 기간에 지나치게 오른 집값은 집을 사야 하고, 사고 싶은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을 이미 뛰어 넘었다. 오를래야 오를 수 없는 한계에 달한 것이다.
그렇다면 만일 상승에 대한 기대심이 꺼진다면 어떻게 될까?
2억의 집을 사기 위해 1억의 부채를 갚고 있는데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것이고 고스란히 빚을 갚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어짜피 살기 위해 산 집이니 천천히 부채 갚으면서 집값은 생각 않고 살겠다고 할까?
그렇다면 다행이다. 적어도 부동산 시장이 폭락하지는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가격이 오를 것이란 믿음으로 무리한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반대로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더 떨어질 까봐 하는 공포심을 갖기 마련이다. 이런 탓으로 투기는 투매를 부르는 법이다. 더 늦기 전에 막차를 올라타야 한다는 심정으로 투자를 시작했는데 시장은 기대한 데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출입문 폐쇄공포증에 빠진다. 즉 육중한 문이 철커덕 닫히기 전에 그 문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공포심에 휩쌓이는 것이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집값의 100%까지 빚을 내 주는 최첨단 선진(?) 금융 환경은 아니었다. 뒤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참여 정부 시절 소득 대비 부채 수준도 규제를 했다. 부채 상환 원리금이 소득의 40%를 넘어서지 않게 부채 한도를 묶어 놓은 것이다. 다소 버겁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빚을 갚아나가는데 큰 부담이 없다는 가정이 많다.
지난해 삼성경제 연구소가 1000가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절반이 빚이 있고 빚이 있는 가구 중 80%가량이 부채가 과도한 수준은 아니라고 답했다고 한다. 물론 그 답은 상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실제 주택가격 하락으로 금융불안이 가중 될 당시에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분위기상으로는 아직까지 부채 상환의 어려움이 극단적이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또한 지난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단기 투자 수익만을 노리는 투기를 크게 줄인 것도 다행스런 일이다. 전매 제한을 통해 계약하자마자 프리미엄을 챙기는 투기거래를 줄인 것이다. 전매는 적은 자금으로 단기 투자 수익만 노리는 투기를 부추길 수 있는 제도이다. 빚으로 계약금만 마련해 투자하자 마자 프리미엄을 챙기고 빠지는 소위 레버리지 투자로 활용될 소지가 큰 것이다. 전매제한 조치로 부동산 투자를 하려면 상당히 큰 투자 금액이 필요하게 되어 투자할 때 신중한 태도가 형성되었다. 당연히 투기 수요는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주택가격에 거품이 껴 있기는 하지만 가구의 소득에 큰 변동이 생기지 않는 한 폭락이라는 극단적인 위험으로 치달을 분위기는 아닐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세계 경제가 불안하게 움직이면서 경기 하강, 물가 상승이라는 악재가 있다는 것이다. 당장은 빚을 갚아나갈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대처할 쿠션이 없는 재무구조이다. 만에 하나 경기 하강으로 기업이 다시 구조조정에 나서고 물가 상승이 멈추지 않는다면 대단히 극단적인 위험에 노출 될 가정이 적지 않은 아슬아슬한 현실이다.
심지어 최근 들어 전국적으로 미분양사태가 심각해 지면서 건설사업이 어려워지고 있다. 그에 따라 건설사업 초기자금에 투자를 많이 한 저축은행이 부실화 될 것이란 우려가 심각해지고 있다. 현대 경제 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한국판 서브프라임 부실 가능성은 없나?’라는 보고서에서 “비은행 금융기관의 부실화가 현실화되면 금융시장의 신용경색 현상이 나타나고 은행권 등 여타 금융기관에서도 조기 자금상환 압력 등이 거세지면서 금융시장의 급속한 경색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보고서는 ‘특히 취약한 재무구조를 지닌 가계들이 견디지 못해 집을 팔려고 내놓는 매물이 급증해서 부동산 경기가 더욱 악화 되고 가계는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현재 전국적인 미분양 주택은 12만채, 업계 추산은 20만채에 달한다. 이 숫자는 IMF 직후 10만 가구 수준을 크게 상회하는 것이다. 지방 건설사들의 연쇄 부도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건설사들의 부도는 당연히 개발 사업에 돈을 댄 저축은행의 부실로 이어질 것이다. 저축은행의 부실은 금융권의 신용경색으로 이어지고 신용경색은 빚을 갚고 있는 가정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은행이 저축은행의 부실을 보면서 돈을 빌려준 고객에게 표정을 바꿀 것이란 이야기다. 대출 조기 상환, 만기 연장 불가 등으로 이어져 가계 유동성 위기로 되돌아 올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전국적인 미분양 사태는 개인들의 과도한 부동산 재테크가 양산한 결과이기도 하다. 집이 돈이 된다는 믿음으로 내 집 마련 수요가 크게 늘어나자 건설사업이 활성화를 띤 것이다. 그것이 지나쳐 이제 금융권의 신용경색까지 내다보는 상황이 되었다.
부동산 재테크 과열이 돌고 돌아 가계 유동성 위기, 개인 파산 위기로 번질 수 있는 위험한 지경으로 되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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