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04 16:51
가계부 혁명
시대는 인간을 규정한다.
인간은 시대를 규정한다.
상호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서로를 규정하면서, 힘겨루기를 한다.
대개의 경우 시대가 인간에게 좀더 커다란 주도권을 갖고, 그 완고한 구심력을 행사한다.
우리는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조정한다.
물론 가끔 자아라는 원심력이 그 구심력의 울타리를 뛰어넘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울타리를 뛰어넘는 건 극소수의 영웅들이거나 이른바 비정한 사회의 획일적 시스템이 그토록 쉽게도 낙인 찍는 낙오자들이다.
우리는 낙오자 딱지를 받지 않기 위해, 안간힘 쓰면서 그 구심력이 작용하는 울타리 안으로 계속해서 자진해 들어간다.
그렇게 자진해서 들어가는 인간없는 욕망의 시스템 속에서 우리네 삶은 팍팍하다.
우리들 대부분은 적당히 그 구심력이 작용하는 공간들 속에 붙어 있으려고 노력하면서, 좀더 안으로, 아니면 좀더 바깥으로 그때 그때 위치를 바꾸기는 하지만, 이 놀랍도록 풍요롭고, 놀랍도록 비참한 이율배반의 시대, 지구편 한쪽에서는 살을 빼기 위해, 지구 다른 한편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아사하는.. 놀랍도록 세련된 야만의 시대를, 이른바 동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
삶과 멀어질수록 언어는 공허해지기 마련이다.
피와 땀이 흐르지 않는 메마른 이야기는 나도 더 이상은 하고 싶지 않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가계부라는 독특한 물건에 대해서다.
세상에 이토록 따분한 물건이 또 있을까?
거기에는 그저 건조한 항목들과 수치들이 딱딱하게 나열되어 있는 것 같다.
거기에는 시도 없고, 음악도 없으며, 그저 재화의 입출입에 관한 숫자들만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거기에는 드라마도 없고, 로맨스도 없으며, 그저 그런 팍팍한 하루 하루의 삶들이 보이지 않는 물 얼룩처럼 천천히 쌓여갈 뿐이라고...
우리들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실은 그 반대다.
자본주의 실존은 소비를 통해 존재를 드러낸다.
우리는 무엇을 구입할 것인가, 어떤 상품을 거절할 것인가, 최근 논란이 된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소비가 갖는 사회적인 성격, 실존적이며, 철학적인 성격은 거듭 거듭 강조되어야 마땅하다.
인간의 삶을 비참한 자동반복적 욕망으로 몰아가는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인간은 소비함으로써, 어떤 물건을 선택할 것인가, 어떤 물품들을 누구를 위해 구입할 것인가,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며, 존재를 구체적으로 체화시킨다. 이런 생산과 소비를 통해 철학과 세계관을, 자기 자신을, 자기의 세속적 욕망과, 그 욕망들과 섞이지 않는 자기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가장 순결한 소망을, 자신이 살아가는 그 모든 의미들을 스스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 삶을 기록하는 건, 그 기억을 붙잡는 건, 무슨 호사스런 재벌 드라마의 풍경들이 아니다.
근사한 레스토랑과 고급 와인이 등장하는 로맨틱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어떤 폼나는 최신 이론들 따위로 잘난척 하는 철학서들이 아니다.
버드나무 가지처럼 늘어진 문인들의 탐스런 어휘들로 풀어가는 소설이 아니다.
바로 당신이 쓰는 가계부다.
가계부는 우리들의 내밀한 소망이 담겨진 드라마고, 우리의 욕망이 스며들어 있는 시나리오이며,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철학서이고, 우리 스스로가 작가가 되어 써나가는 시이자 소설이다. 우리 이카루스의 후예들이 그 날개를 다시 펴 날아오르고 싶은 욕망과 소망을 기록하는....
우리는 가계부에 그저 물품들과 그 물품들이, 재화들의 입출입 날자들을 기록하는게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소비하고, 구입하는 물질들에 우리의 영혼을 투사하고, 자신의 실존을 투영하면서 자신의 꿈과 좌절과 희망을 기록하는 거다. 그래서 그저 물질이 물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반대말이라는 상투적 관념형으로 끝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의 '짝말'이 되어 우리 삶 그 자체가 되는 거다.
가계부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험과 좌절과 꿈을 기록한다.
가계부는 우리들의 모험이 담긴 작은 오디세이아이다.
인간은 시대를 규정한다.
상호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서로를 규정하면서, 힘겨루기를 한다.
대개의 경우 시대가 인간에게 좀더 커다란 주도권을 갖고, 그 완고한 구심력을 행사한다.
우리는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조정한다.
물론 가끔 자아라는 원심력이 그 구심력의 울타리를 뛰어넘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울타리를 뛰어넘는 건 극소수의 영웅들이거나 이른바 비정한 사회의 획일적 시스템이 그토록 쉽게도 낙인 찍는 낙오자들이다.
우리는 낙오자 딱지를 받지 않기 위해, 안간힘 쓰면서 그 구심력이 작용하는 울타리 안으로 계속해서 자진해 들어간다.
그렇게 자진해서 들어가는 인간없는 욕망의 시스템 속에서 우리네 삶은 팍팍하다.
우리들 대부분은 적당히 그 구심력이 작용하는 공간들 속에 붙어 있으려고 노력하면서, 좀더 안으로, 아니면 좀더 바깥으로 그때 그때 위치를 바꾸기는 하지만, 이 놀랍도록 풍요롭고, 놀랍도록 비참한 이율배반의 시대, 지구편 한쪽에서는 살을 빼기 위해, 지구 다른 한편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아사하는.. 놀랍도록 세련된 야만의 시대를, 이른바 동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
삶과 멀어질수록 언어는 공허해지기 마련이다.
피와 땀이 흐르지 않는 메마른 이야기는 나도 더 이상은 하고 싶지 않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가계부라는 독특한 물건에 대해서다.
세상에 이토록 따분한 물건이 또 있을까?
거기에는 그저 건조한 항목들과 수치들이 딱딱하게 나열되어 있는 것 같다.
거기에는 시도 없고, 음악도 없으며, 그저 재화의 입출입에 관한 숫자들만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거기에는 드라마도 없고, 로맨스도 없으며, 그저 그런 팍팍한 하루 하루의 삶들이 보이지 않는 물 얼룩처럼 천천히 쌓여갈 뿐이라고...
우리들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실은 그 반대다.
자본주의 실존은 소비를 통해 존재를 드러낸다.
우리는 무엇을 구입할 것인가, 어떤 상품을 거절할 것인가, 최근 논란이 된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소비가 갖는 사회적인 성격, 실존적이며, 철학적인 성격은 거듭 거듭 강조되어야 마땅하다.
인간의 삶을 비참한 자동반복적 욕망으로 몰아가는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인간은 소비함으로써, 어떤 물건을 선택할 것인가, 어떤 물품들을 누구를 위해 구입할 것인가,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며, 존재를 구체적으로 체화시킨다. 이런 생산과 소비를 통해 철학과 세계관을, 자기 자신을, 자기의 세속적 욕망과, 그 욕망들과 섞이지 않는 자기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가장 순결한 소망을, 자신이 살아가는 그 모든 의미들을 스스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 삶을 기록하는 건, 그 기억을 붙잡는 건, 무슨 호사스런 재벌 드라마의 풍경들이 아니다.
근사한 레스토랑과 고급 와인이 등장하는 로맨틱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어떤 폼나는 최신 이론들 따위로 잘난척 하는 철학서들이 아니다.
버드나무 가지처럼 늘어진 문인들의 탐스런 어휘들로 풀어가는 소설이 아니다.
바로 당신이 쓰는 가계부다.
가계부는 우리들의 내밀한 소망이 담겨진 드라마고, 우리의 욕망이 스며들어 있는 시나리오이며,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철학서이고, 우리 스스로가 작가가 되어 써나가는 시이자 소설이다. 우리 이카루스의 후예들이 그 날개를 다시 펴 날아오르고 싶은 욕망과 소망을 기록하는....
우리는 가계부에 그저 물품들과 그 물품들이, 재화들의 입출입 날자들을 기록하는게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소비하고, 구입하는 물질들에 우리의 영혼을 투사하고, 자신의 실존을 투영하면서 자신의 꿈과 좌절과 희망을 기록하는 거다. 그래서 그저 물질이 물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반대말이라는 상투적 관념형으로 끝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의 '짝말'이 되어 우리 삶 그 자체가 되는 거다.
가계부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험과 좌절과 꿈을 기록한다.
가계부는 우리들의 모험이 담긴 작은 오디세이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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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 거짓이 없는 내가 우리가족이 살아온 흔적인듯하다..
쓰면서 불안해하고 촉박해하지만... 결국은 월급을 다써버린 흔적만 있다.ㅋㅋ
언제쯤 불안해 하지 않고 쓸려나....
우리네 서민들의 삶이 다들 그렇죠...
임하님께서 희망이 담긴 기쁨의 가계부를 쓸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라봅니다...
늘 한발씩만 나갈 수 있다면 그것이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겠지요~
물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