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무담보 소액대출이 활발하다. 몇 년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이 좋은 성공사례가 된 것이다. 담보를 제공할 수 없는 금융소외계층에게 담보없이 돈을 빌려주는 일명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이 그의 노벨상 수상이후 우리나라 시민사회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큰 돈을 빌려주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채무 불이행에 따르는 손실과 위험을 무시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정부 차원에서도 미소금융이라는 것을 통해 이 사업을 시작했다. 취약계층에게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은 어떤 측면에서는 대단히 유용할 수 있다.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도 빠듯한 사람들에게 담보물이 없어 급할 때 돈을 융통할 수 없는 문제는 심각한 일이다. 갑자기 가족 중에 누가 다치거나 아프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는 바람에 사채를 끌어썼다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다. 중산층 이상이라면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하거나 이미 높은 신용카드 한도액을 이용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취약계층에게는 만약의 경우 사용할 신용이라는 것이 대단히 제한적이다. 이런 경우 긴급자금으로 일시적인 자금 공급이 유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마이크로 크레딧 자금의 대부분은 사업자금으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일부 SOS사업으로 가계 긴급자금이 지원되기는 하나 극히 작은 부분이다.
사업자금으로 몇 천만원의 자금 지원이 어느 정도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몇 천 만원으로 창업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다. 사업 상의 긴급자금이나 확장자금에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이런 자금을 지원받은 사람들의 사후 재정 상태를 분석해 보면 사업자금 지원으로 급한 불을 끈 것은 사실이지만 차후 재정상태가 개선되는 경우는 드문 것 또한 사실이다.
채무 불이행 경험은 자부심을 훼손시킨다.
어느 민간단체로부터 마이크로크레딧 자금을 통해 지원받은 A씨를 상담했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A씨는 창업자금 대출을 받기 전에는 미용실에서 미용사로 일을 했다. 한 부모로 아이 둘을 혼자 키워야 하는 입장에서 미용실에서 받는 월급만으로는 저축하는 것은 벅찬 일이었다. 창업을 하면 소득을 키워 미래계획을 좀 더 든든하게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자주 하던 차였다. 단체에서 모집하는 무담보 소액 창업 대출 정보를 접하고 상담을 받았다. 그리고 그 단체의 대출금으로 창업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에는 분명히 월급보다는 많은 액수의 돈을 벌 수 있었다. 오랜만에 저축이라는 것도 할 수 있었고 교회에 십일조도 든든하게 낼 수 있게 되어 행복했다고 한다. 그런데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저축이 슬금슬금 줄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사교육비가 이전보다 늘어난 것이 원인이기도 했고 매출도 처음 창업했을 때보다 더 늘어나기는커녕 줄어드는 기운이 감지되었다. 이러다 좋아지겠지 했으나 결국 소득이 창업초기보다 오히려 삼분의 일토막이 되었다. 그런데 늘어난 소득만큼 늘어난 지출이 문제였다.
사교육비가 50여만원, 십일조가 30만원, 보험료가 30만원이다. 매출에서 이런 저런 비용을 떼고 나면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100여 만원인데 세가지 항목만으로 이미 소득을 뛰어넘은 것이다. 이 상태로라면 부채 상환은 포기해야 할 판이다.
그동안은 매출이 정상적일 때 남겨 모은 돈으로 생활을 했지만 몇 개월 전부터는 신용카드를 돌리며 생활하고 있었다. 소비를 구조조정하자는 제안이 당장 시급했으나 어떻게 다시 되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낙관만으로 구조조정을 거부하고 있다.
재정적 훈련이 덜 된 상태에서 저리 대부지원으로 막연히 이뤄진 창업은 때로 그 가정경제에 독이 될 수도 있다. 고정 수입 관리도 체계적으로 하기 어려워 하는 사람들에게 불규칙한 창업소득, 그것도 매출과 자신의 가계 순 소득을 구분해야 하는 복잡한 재정운영은 불가능한 것이다. 결국 어느 순간 꼬일 대로 꼬인 돈 문제가 관리의지 자체를 꺾게 만들고 상환에 대한 의지는 희박해지면서 막연히 상황이 좋아지면 그때가서 다시 생각할 문제로 덮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자신이 결과적으로 선한의도의 정책자금 상환이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자부심 손상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이것은 그 사람들에게 유쾌한 경험은 분명히 아니다. 제도권 금융시스템에서처럼 지독한 채무 독촉을 받거나 불법 채권 추심으로 인격모독의 경험을 하지는 않지만 당사자에게 깊은 좌절감을 경험하게 하는 결과인 셈이다.
저축의 동기부여, 희망통장이 만드는 진짜 희망
반대로 서울시에서 진행하고 있는 희망통장은 사람들에게 대단히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준다. 소득은 한정되어 있다. 거기에서 미래 계획과 목표를 수립하는 것이다. 창업이 목표가 될 수도 있고 아이들 교육비가 목적이 될 수도 있다. 그 목표하에 저축계획을 세우고 희망통장 신청을 하는 것이다. 재무상담은 그 사람들의 희망목표 달성을 돕는 재무관리 계획을 수립해주고 실행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제공하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소득이 한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저축액을 기존 소득에서 소비를 줄여 빼내야 하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 당연히 저축을 빼고 줄어든 소득으로 예산을 수립하고 고정지출을 줄이며 체계적인 지출을 하는 건전한 재무습관을 경험하게 된다.
한 마디로 타이트한 재무훈련을 하는 셈이다. 그렇게 어렵게 한달 한달 지나면서 저축목표를 달성해 가는 것이다. 처음 예산을 수립할 때만 해도 과연 이 돈으로 생활할 수 있을까 했던 사람들이 자신이 계획대로 실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자부심을 경험한다.
자신의 그 어려운 노력을 통해 저축 통장에 돈이 조금씩 쌓여 목표에 근접하는 즐거움도 맛보게 된다. 성취감을 경험하는 것이고 앞으로 소득이 늘어날 경우 지금처럼 생활하는 것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더한 저축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가질 수 있다.
재정관리 습관과 실행 능력이 충분히 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득이 늘어나는 것은 길게 볼 때 그 가정경제에 득보다는 실이 될 위험이 있다. 소비는 늘리기는 쉬워도 줄이기 어려운 하방 경직을 띠기 때문이다. 소득의 증가는 저축의 증가로 미래 지향적인 돈관리 습관과 더불어 이뤄질 때만이 그 가정경제가 탄탄하게 흘러갈 수 있다. 돈 벌이란 우리가 쉽게 낙관하는 것 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은 소득을 쪼개 저축할 수 있는 지혜와 실천력은 소득이 늘어날 때 조차 언제나 미래 최악을 전제하면서 그 때를 대비하게 만드는 힘을 주는 것이다. 막연히 소득만 늘어난다고 지금의 저소득층, 취약계층의 경제적 박탈감, 경제적 힘겨움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가난을 통제하고 극복할 스스로의 자부심과 목표의식, 어려운 상황에서의 진짜 긍정성이 그들에게 지속가능한 경제적 자유를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때로 가난은 인간에게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지혜를 선물하는 좋은 공부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가난을 통해 지속적인 삶의 행복을 위한 원천을 얻으려면 저축을 통한 긍정적 경험과 자부심, 돈관리의 동기부여가 전제되어야 한다.
지금의 저소득층에게 더 이상 빚을 권하는 복지가 아닌 저축을 권하는 복지가 절실한 이유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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