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튤립 투기 사건은 투기의 기원이자 그 원형으로 이야기된다. 막연한 기대와 환상으로 시작해서 깊은 환멸과 좌절을 남긴 그 튜립 투기 사건은 어떤 희극보다 희극적이고, 어떤 비극보다 비극적이다. 에드워드 챈슬러는 이를 이렇게 묘사한다. 좀 길지만 발췌해서 인용한다. (괄호 안 숫자는 쪽수 표시).
당시 네델란드인들은 꽃의 색깔에 따라 튤립을 다양하게 분류했다. 또 위계서열에 따라 군계급과 같은 이름을 붙였다. 최상급 꽃은 잎에 황실을 상징하는 붉은 줄무늬가 있어 '황제'라고 불렀고, 이어 '총독'과 '제독', '장군' 순으로 이름을 붙여졌다. 1624년 황제튤립은 당시 암스테르담 시내의 집 한 채 값과 맞먹는 1,200 플로린(florin. 당시 유동된 금화)에 거래되었다. [...] 꽃이 만개할 때까지 무늬와 샐깍을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 툴립투기의 우연성을 극대화해주었다. [...] 당시 고가주였던 동인도회사의 주식에 투자할 돈이 없었던 가난한 서민들은 '꿩 대신 닭'이라는 말 그대로 튤립 한 뿌리에 모든 것을 걸었다. 툴립 뿌리는 표준화되었고, 네덜란드 중앙은행인 비셀방크의 은행권이나 동인도 회사의 주식과 같이 취급되었다.(42. 43.)
노란색 평범한 튤립 뿌리 1파운드는 네덜란드 노동자들이 1년 동안 벌어들인 돈의 6배에 달하는 수준으로 가격이 폭등했다. 튤립의 적정가격이 얼마인지를 밝히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다만 어느 가격 정보지 발행자가 “사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이 투기 열풍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것이다”라며 파국을 암시했을 뿐이다.(46. 47)
마침내 1637년 2월 3일 튤립시장이 붕괴했다. 튤립거래의 중심지였던 하를렘에는 더 이상 살 사람이 없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매매는 이뤄지지 않았고 부도가 줄지어 발생했다. 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했던 거상들은 튤립공황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앟았다. 하지만 많은 서민들은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입었다. 튤립시장의 불안은 1년 뒤인 1638년 5월까지 지속되었다. (47. 48.)
공황을 거치면서 튤립투기는 극단적인 튤립혐오로 바뀌었다. 에브라드 포스티우스는 지팡이로 눈에 띄는 튤립은 모두 후려칠 정도였다고 한다. 일확천금 바람이 한 차례 네델란드를 휩쓸자 노동을 성스럽게 여긴 칼뱅주의적 전통도 무너져내렸다. (49.)
중세 카니발은 특정한 기간에만 주기적으로 열렸던 현실도피적 이벤트였다. 프랑스 역사가 라두리는 카니발을 '오르가슴 같은 간주곡'이라고 불렀다. 투기적 광기도 주기적으로 몰아쳤다. 투기꾼들은 '꿈처럼 비현실적이었다'고 그 순간을 회고한다. 미하일 바흐친에게 카니발은 붕괴의 순간이면서 자연과 사회, 인간의 질서가 깨지는 것으로 보였다. [....] 카니발과 투기의 종말 역시 비슷하다. 왕을 상징하는 허수아비를 태우는 거으로 카니발이 끝나고 질서가 회복된 것처럼, 투기도 1720년대 미시시피 버블의 존 로나 1990년 정크본드의 왕인 마이클 밀켄 같은 대표적인 투기꾼들이 비난의 뭇매를 맞거나 빈털터리가 되고, 마침내는 감옥에 갇히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카니발의 왕처럼 이들 투기꾼들이 한 사회의 속죄양이 됨으로써 한 사회의 질서가 회복된다. (59)
투기적 광기는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자본주의의 카니발로, '바보들의 잔치'로 오늘날까지 살아 있다.(61.)
- 에드워드 챈슬러, '거품으로 만들어진 세계 : 금융 버블의 기원', [금융투기의 역사], pp. 29~6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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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van Goyen (1596~1656).
고국 네덜란드의 풍경을 주로 그렸던 유명한 풍경화가 Goyen도 튤립 투기의 희생자다. 그는 "파국(튤립시장 붕괴) 하루 전에 900길더와 자신의 그림 한 폭을 주고 튤립 한 뿌리를 구입했다가 값이 폭락하는 바람에 이후 19년 동안 비참한 가난에 시달리다 숨을 거둬야 했다(Taylor, Dutch Flower Painting, p. 13.)
경제는 호황과 과열을 지나 붕괴와 불황을 거친 후 다시 호황으로 이어지는 순환을 반복한다. 세상이 정보화 되면서 이러한 경제 순환공식을 많은 전문가들이 연구하고 정부정책 입안자들이 분석을 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여러 노력들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들은 큰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17세기에 튤립뿌리 하나에 인생을 건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식에서 땅, 아파트 등으로 여전히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 김모씨는 2006년 하반기에 집 값의 절반이나 대출을 끼고 집을 샀다. 다소 무리한 대출로 인해 처음에는 불안했다. 그러다 지난해 집값이 1억 9천만원에서 3억 3천만원까지 거의 두 배 가까이 뛰어오르자 불안한 마음은 이내 뿌듯한 마음으로 바뀌었다.
김씨는 양도소득세 면세 시점만 되면 집을 처분해 빚을 갚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오르는 금리로 인해 가계 재정상태가 적자구조로 돌아서자 마음이 조급해 지기 시작했다. 9,700만원의 부채는 이자만 겨우 갚고 있는 상황이고 부동산 외 자산은 마이너스 나고 있는 펀드가 약간 있을 뿐이다. 김씨의 아내는 세금을 내고서라도 팔아서 전세로 이사하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그녀는 모르는 소리 한다는 남편의 핀잔만 들어야 했다.
자산 착시 현상으로 위기를 외면한다.
그 누구도 내가 가진 자산의 가치가 1억 9천만원에서 3억 3천만원까지 상승했다는 사실 앞에서 흥분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집 하나 잘 산 것만으로 불과 1년도 안돼 1억 4천만원이나 벌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들뜨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문제는 그런 흥분과 들뜸을 냉철한 현실인식을 토대로 통제하고 조절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산 가치 상승이 가져다 주는 달콤한 유혹에 쉽게 이성적 판단을 접어 버린다. 일명 wealth effect, 자산효과라는 것이 있다. 주택이나 주식 등의 자산 가치가 상승하면 소비도 증가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아직 장부상의 가치일 뿐임에도 통계수치에 뚜렷한 소비 증가세가 눈에 띌 정도로 일명 돈 벌었다는 생각에 들뜨는 소비를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부동산 자산의 가격 상승이 내수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2002년 이후로 상당히 약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 소비를 늘리고 싶어도 이미 큰 빚을 내서 집을 산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산효과가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산이 늘고 있어 미래의 소득이 증가할 것이란 기대심으로 가계 재무건전성이 상당히 심각한 지경까지 가고 있는 것은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사례의 김씨는 평달 소득의 20% 이상을 부채이자로 고스란히 지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기간에 집값이 크게 올랐다는 위험한 성취감에 취해 현실을 냉정히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양도소득세가 아깝다는 생각을 하면서 소득의 20% 이상을 은행 이자로 지출하는 생활을 반복하는 것이다. 심지어 금리가 오르고 있어 이자비용이 지난해에는 50만원이 안되었었는데 최근에는 60만원 가까이까지 올랐다. 이대로 계속 오른다면 조만간 소득의 30%를 넘길 수도 있다. 물가까지 올라 외식도 거의 포기하고 전기 불 하나에 신경 쓰는 생활을 하면서도 양도소득세 절세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더 오를 것이란 기대심과 한번 올랐을 때 경험한 들뜸이 이런 불편하고 아슬아슬한 현실을 감내하게 하는 것이다. 심지어 최근 부동산 시장이 상당히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급매물 조차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 현실임에도 양도차익을 실현하겠다는 욕심으로 자산가치에 대해 주관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최고 3억 3천만원까지 갔던 최고점 가격에 호가가 머물러 있다.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 현실은 그 호가에 매수자들이 매수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고 그 만큼 시장 가격은 이미 매수자들에게는 심리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도자들만이 막연한 믿음, 최고 가격에 대한 미련으로 자산 가격에 대해 착각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자산 착시 현상으로 하루 하루 재무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는 현실의 위험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무조건 오를 것이란 믿음이 앞뒤 계산도 안하는 무모함을 만든다.
양도소득세는 말 그대로 집을 팔아서 돈이 남는 것에 세금을 내는 것이다. 김씨는 막연히 3년 보유 2년 거주라는 비과세 요건을 갖추지 못해 세금을 차익의 50% 정도 부담해야 한다고 알고 있다. 대략 7천만원의 세금부담이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부동산으로 투자 차익을 남기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지 정확히 양도소득세 계산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김씨는 3년 보유는 못했지만 2년 거주를 했기 때문에 양도소득세가 50%가 아니다. 세율은 36%이고 그나마도 양도차익 1억 4천만원 전체에 대해 세율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필요경비 공제와 양도 기본공제, 누진공제 등을 적용해서 대략 양도소득세가 3,500만원 가량 산출된다. 그나마도 원하는 가격에 거래가 성사될 경우이다. 만일 3억 미만으로 거래가 될 경우 세금은 절반가량이 줄어든다. 비과세요건을 갖출 때까지 기다려서 그 정도의 세금도 아끼면 더 좋겠지만 기다렸다가 차익도 못 챙길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금리가 계속 오른다면 부채 원금을 고스란히 떠안고 높은 이자부담에 허덕이는 생활을 계속 해야 한다. 또한 이자만 내는 3년이 지나고 나면 원금까지 함께 상환해야 하는데 그 때는 본격적인 적자생활이 이어질 것이 뻔하다.
당장이라도 차익에 대한 막연한 기대심을 접고 최대한 정상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양도소득세는 나의 생돈이 깨지는 것이 아니다. 세금 하나 없이 부동산으로 1억이 넘는 큰 돈 벌겠다는 욕심만 없으면 지금이라도 위험을 최소화 하고 미래 계획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다. 거래가 거의 없다 하더라도 가격이 합리적인 수준, 즉 자신이 2년 전에 매입했던 가격에서 이자 비용, 적금이자의 기회비용 정도만 계산해서 가격에 대한 눈높이를 낮춘다면 어렵지만 분명히 매도자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막연한 기대심으로 미래를 부동산 하나에 올인한 채 아슬아슬하게 내맡겨 버리는 현실보다 훨씬 현실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17세기 튤립공황 후 길거리에 내몰린 서민들이 그제서야 튤립이 '꽃'임을 알았던 것과 같이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란다면 이제라도 집이 돈벌이 수단이 아닌 ‘사는 곳’일 뿐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되돌아 봐야 할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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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곳’일 뿐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되돌아 봐야 할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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